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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 ‘전통 농경지’ 보존과 관광 연계

by 탐험가 대장 2025. 7. 16.

현대화된 농업 기술이 일상화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전통 방식의 농업을 고수하며 조상 대대로 이어온 땅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일구는 '전통 농경지'는 단순히 곡식을 수확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유산이자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최근에는 이런 전통 농업지를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광과 연계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환경과 문화를 함께 지키는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세계 각국의 전통 농경지 보존 사례와 그것이 어떻게 지속가능한 관광 자원으로 발전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일본 시라카와고: 눈 내리는 합장촌과 계단식 논의 공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일본 기후현의 시라카와고는 전통적인 합장 구조의 목조 가옥과 함께, 계단식 논으로도 유명한 지역입니다. 이곳은 눈이 많은 지역 특성상, 경사지에 계단형 논을 만들어 논배미마다 물을 고르게 공급하고 자연 배수를 유도하는 전통 농법을 활용합니다. 시라카와고는 농업을 주제로 한 생태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방문객이 실제로 논을 체험하거나 벼베기, 모내기 등을 직접 해볼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구경에서 그치지 않고, 여행자가 지역 문화의 일부로 잠시 참여하게 만드는 구조로, 농업의 전통성을 알리고 농촌경제에도 도움을 주는 모범 사례입니다.

필리핀 바나우에 계단식 논: 천년의 시간을 품은 살아있는 유산

‘천국의 계단’이라 불리는 필리핀 바나우에 계단식 논은 약 2,000년 전 이푸가오족에 의해 조성된 유산입니다. 고도와 지형을 고려한 정교한 수로 시스템, 돌과 진흙으로 다진 논두렁은 고대의 수공업 농업 기술이 얼마나 섬세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나우에는 최근까지도 전통 농법을 유지하는 지역 공동체가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농촌 홈스테이, 전통 음악 체험, 논 걷기 투어 등이 진행됩니다. 현지인은 농업을 단지 생계수단이 아닌, 문화 전승의 도구로 여기며, 방문객에게는 그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 방식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여행 경험을 제공합니다.

중국 유산 농업 시스템: GIAHS 인증 농촌 관광의 모델

FAO(유엔식량농업기구)는 전 세계의 전통 농경지를 ‘세계중요농업유산시스템(GIAHS,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GIAHS 인증을 받은 전통 농업지 수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대표적인 예로 저장성의 하이닝 연못·논 복합농업 시스템, 윈난성의 훙허 하니족 계단식 논 등이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농업유산지를 보존하는 동시에 관광과 접목해 지역 커뮤니티의 자립을 유도하고 있으며, 각 지역에서는 농업 체험, 생태 교육, 전통 음식 만들기 등 관광상품을 개발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유럽 전통 농경지의 예술적 경관화

이탈리아 토스카나는 유럽 전통 농업의 상징적인 지역으로, 유기농법과 전통 포도 재배 방식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포도밭과 올리브 밭이 이어지는 언덕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토스카나 지역에서는 ‘아그리투리즘(Agriturismo)’이라 불리는 농가 숙박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어, 관광객들은 농가에서 직접 수확하고 요리하며 와인과 올리브 오일을 맛보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관광이 농업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농업 보존을 돕는 방식으로 전환된 대표적인 예로,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 농업지: 청산도 구들장 논과 고창 벽골제

우리나라에도 세계가 주목하는 전통 농경지가 존재합니다. 전라남도 완도의 청산도는 돌로 만든 논바닥, 이른바 ‘구들장 논’으로 유명한데, 물이 귀한 섬 지역에서 증발을 막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독특한 농업 방식입니다. 이 논은 유네스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청산도 슬로우워크길을 따라 걷다 보면 구들장 논 사이로 난 산책로와 함께 마을 주민들이 안내하는 농업 체험 코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라북도 고창의 벽골제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거대한 수리시설로, 고대의 치수기술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근의 들녘과 함께 전통 농경 문화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관광과 보존의 균형, 어떻게 가능할까?

전통 농경지의 관광화는 자칫하면 ‘소비’의 대상이 되거나, 원래의 농업 목적이 희생되는 위험을 수반합니다. 따라서 각국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첫째, 지역 공동체가 직접 참여하고 주도하는 운영 구조를 채택합니다. 둘째, 농업을 단순한 전시물이 아닌 ‘살아 있는 현장’으로 유지합니다. 셋째, 관광수익을 지역에 재투자해 보존 활동을 강화합니다. 이처럼 보존과 관광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때, 전통 농경지는 단순한 옛 유산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잇는 생명력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농업은 단지 식량을 생산하는 산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땅과 사람, 전통과 기술, 문화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입니다. 전통 농경지를 지키는 일은 단지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지속 가능한 지구를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행자는 그 한가운데에서 배우고, 느끼고, 함께 가치를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