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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산악지대 ‘로컬 레전드’와 전설 이야기

by 탐험가 대장 2025. 6. 23.

산은 단순한 흙과 바위의 거대한 집합체가 아닙니다.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켜온 산은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들의 보고(寶庫)입니다. 특히 문명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험준한 산악지대에는 그곳에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신비로운 '로컬 레전드'가 살아 숨 쉬고 있죠.

오늘은 등산화 끈을 조여매고, 단순한 정상을 향한 등반을 넘어 산이 품고 있는 비밀스러운 전설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시작해 봅니다. 세계 각지의 산악지대에 깃든 매혹적인 로컬 레전드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이탈리아 돌로미티: 달의 공주를 위해 하얗게 빛나는 산

이탈리아 북동부에 자리한 돌로미티 산맥은 해 질 녘이면 분홍빛과 주황빛으로 불타오르는 '엔로사디라(Enrosadira)' 현상으로 유명합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달의 공주에 대한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돌로미티 왕국의 왕자는 달에 사는 공주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왕국으로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달의 눈부신 빛에 익숙했던 공주는 어둡고 칙칙한 지구의 산을 견디지 못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죠. 공주를 너무나 사랑했던 왕자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숲속의 난쟁이 '살반(Salvan)'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왕자를 돕기 위해 밤새도록 달빛을 모아 마법의 실로 짠 그물을 산 전체에 덮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돌로미티의 모든 산봉우리는 달빛처럼 하얗고 영롱하게 빛나게 되었고, 공주는 비로소 행복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이 전설 덕분에 돌로미티는 '창백한 산(Monti Pallidi)'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여행자들은 그저 아름다운 암석이 아닌, 전설 속 사랑의 증표를 마주하게 됩니다.

 

말레이시아 키나발루 산: 정상에서 영원한 사랑을 기다리는 영혼

보르네오 섬의 지붕이라 불리는 키나발루 산(해발 4,095m)은 동남아시아 최고봉으로 수많은 등반객의 도전을 받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 산은 현지 카다잔-두순 부족에게는 조상들의 영혼이 머무는 신성한 안식처이자, 슬픈 사랑의 전설이 깃든 장소입니다.

아주 먼 옛날, 한 중국인 왕자가 해안가 마을의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던 왕자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죠. 남겨진 여인은 매일 키나발루 산 정상에 올라 남편이 떠나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다렸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슬픔과 그리움으로 지친 그녀는 그 자리에서 돌로 변해버렸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산의 이름을 '중국인 미망인'이라는 뜻의 '치나 발루(Cina Balu)'라고 불렀고, 이것이 오늘날 '키나발루'의 어원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정상에 오르는 이들은 단순한 등반을 넘어, 한 여인의 애절한 기다림과 마주하게 되는 셈입니다.

 

미국 슈퍼스티션 산맥: 저주받은 황금과 사라진 사람들

미국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슈퍼스티션 산맥은 이름(Superstition, 미신)부터 으스스한 기운을 풍깁니다. 이곳은 바로 서부 개척 시대 최고의 미스터리 중 하나인 '잃어버린 네덜란드인의 금광(Lost Dutchman's Gold Mine)' 전설의 무대입니다.

19세기 독일 이민자 야코프 왈츠(Jacob Waltz, 당시 독일인을 '더치맨'이라 불렀음)가 이 산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금광을 발견했지만, 임종 직전 그 위치를 모호하게 남긴 채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후 수많은 사람이 황금의 유혹에 이끌려 산으로 들어갔지만, 대부분 길을 잃거나 의문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원주민인 아파치족은 원래부터 이 산을 천둥신이 지키는 신성한 장소로 여겨 외부인의 접근을 금했으며, 금광을 탐하는 자들에게는 신의 저주가 내린다고 믿었습니다. 황금, 저주, 의문의 죽음이 뒤얽힌 이 로컬 레전드는 지금도 수많은 모험가와 미스터리 사냥꾼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산은 그저 오르는 대상이 아니라,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교감하는 대상이 될 때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다음 산행에서는 정상의 풍경 너머, 바람결에 실려오는 오래된 전설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요?